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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함을 찾아서/상해출장

거대한 공간을 마음에 심는 건 작은 찻잔이 하는 일 본문

DAY 2

거대한 공간을 마음에 심는 건 작은 찻잔이 하는 일

나연이나연 2025. 3. 19. 21:48

푸동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기체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있을 때 창문 너머엔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서있는 누런 대륙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지평선에 침침한 초점을 애써 그러모으고서야 그것이 바다-황해(黄海)-라는 것을 알았다.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넓디넓은 황푸강(黄浦江)은 대륙을 서서히 누비며 누런 흙을 그러모아 바다로 나르고 있었다. 이 넓은 땅은 자연의 간척사업을 통해 더 넓어지고 있는 걸까? 지리적 환경은 인간의 인식과 감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별수 없이 '거대함'은 중국의 문화적 특질이 되었을 테다. 

걸어도 걸어도 멀기만 한 푸동공항의 입국심사대. 공항에서만 이미 5000보.



개인적으로 이번 출장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는 상해 박물관 동관이었다. 중국 제1의 경제도시이자 국제도시인 상하이를 대표하는 박물관의 분관으로 2024년 개관한, 가장 최신의 중국 공공건축의 모습과, 문화 콘텐츠를 대하는 태도와 방향성, 공공서비스의 현 위치를 가늠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대표 공공시설물들이 들어선 지역답게 반듯한 도로와 더 반듯한 공원, 대륙의 스케일과 미감으로 계획된 도시의 분위기가 가득한, 드넓은 교차로의 끝에서 만난 육면체의 박물관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거대한 나라에서 지어진 건축물의 숙명은 역시나 거대함이다. 아담한 반도에서 살아온 나에게 상해 박물관의 첫인상은 꽤나 위압적이었다. 건물의 외관도 그랬지만 입구부터 여권을 제시하고 검색대도 통과해야 하는 절차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상해도서관에서도 이미 검색을 받았었고, 지나고 보니 이 행위가 그저 형식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늘어서 있는 보안요원들, 빨간 카펫, 검색용 컨베이어 벨트 앞에선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필요한 일이겠지만 첫 발을 들이밀기도 전부터 이토록 경직된 절차라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단 환영은 좀 해주고 그 뒤에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도시의 신규이용자가 되고부터 수시로 자문하게 되었다.

우리의 공간은 낯선 이들을 잘 맞이하고 있는 걸까?

처음 온 이용자에게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일까?

우리도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하고픈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으며 친절함을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일단 압도하고 시작하는 거대한 입구
들어가보니 더 거대한 로비와 내부 중정공간
반가운 영어 사이니지와 안 반가운 검색대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karfedm1212/223659792388)


 
대학시절 동양미술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에서 처음 상(商) 대 (기원전 1600~1046년, 이전에도 만들어졌지만 이때를 중국 청동기의 절정으로 본다.) 청동기 유물의 도판을 접하곤 큰 충격을 받았었다. 국사 수업에서 우리나라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이 얼마나 위대한가 열렬히 가슴에 아로새겼건만 약 3000년 전 중국에 살던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나 거대한 물건을 수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 국가적 규모의 행사를 구성하고 (대부분이 의례용 물건이다) 이를 위한 요소를 세세하게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문화 수준, 어마어마한 양의 원재료를 채취하고 가공할 수 있는 기술력, 그 모든 것을 여러 상징을 통해 구현해 내는 예술적 감각까지 갖췄다니 하나하나 헤아려볼수록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부러움과 약간의 속상함)

유물이 지니고 있는 힘이 너무 강력해서 전시 디스플레이는 심플할 수록 좋았다.
청동으로 이렇게 큰 기물의 주조가 가능할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야말로 대륙의 거대한 힘.

 
해외 박물관에서 중국 고대 청동기를 몇 번 봤지만 이렇게나 많은 양의, 압도적 크기와 중량감이 느껴지는 유물들을 우르르 마주하는 것은 굉장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쉴 새 없이 유물과 나 사이로 치고 들어오는 대륙 사람들의 남다른 관람 매너 사이에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

중국문화의 압도적 역량은 도자기관으로 계속 이어졌다. 청동기를 마음껏 주무르던 사람들이 (물론 청동기는 주물러서 빚어내는 것은 아니다....) 흙을 주무르는 수준이야 말해 뭐 할까. 거대한 크기의 상형토기부터 정교하고 아름다우면서 창의적인 기형, 세상의 모든 빛깔을 구현해 내는 유약 기술까지 오죽 놀라웠으면 고급 도자기를 이르는 말이 'China'가 되었을까. 
 

ChatGPT가 알려주는 친절한 도자기 용어사전

 

 
전시를 관람하다 보니 동양미술의 이해를 수강하며 쌓은 자잘한 지식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 옛날에 청동기와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지원, 어떤 목적 아래서 이토록 다양한 기술이 발전했는지.


오늘 우리의 감탄을 불러일으킨 대부분의 유물들은 국가, 또는 그에 준하는 권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요즘의 기준으로 엄밀하게 보자면 개인적 감상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작품이 아니라 공공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 제작한 제품이랄까. 

박물관엔 또 하나의 독특한 공간이 있었다. 옥상의 정원과 테라스를 연결하는 산책로인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수는 없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일방향이다. 길 폭이 좁지 않은데 왜 일방통행으로 만들었을까 의아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의도한 것 아닌가 싶다. 이 대단하게 거대한 세계를 부감하며 한껏 감탄할 수 있도록. 일면 우월감을 느끼며. 물론 아닐수도 있다. 나는 대륙이 아닌 반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므로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이해의 영역이 있을테니.


 
하지만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옛  작품을 감상하며 현재의 나, 개인으로서의 나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고 싶다. 나에게 박물관은 '유물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곳'이다.

그런 관점에서 제 아무리 중국의 유물이 남다른 크기를 자랑한다 해도 이렇게 높은 벽과 천장, 로비, 야외 공간은 적어도 유물에 집중하게 하는 덴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그 면적을 조금 더 전시장에 내주었더라면, 그래서 때때로 머물러 쉬며 아름답고 세밀한 유물들을 더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벤치 몇 개 놓여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거대한 건물은 재잘대는 각각의 목소리를 담기보다 하나의 외침을 광광 울려대기 위해 설계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후 일정으로 황량하게 변해버린 (역시나) 거대한 현대미술관들을 둘러보고 난 후 씁쓸함이 더해졌다.

어쩌면 우리가 날을 잘못 골라 방문해 놓고 잔뜩 오해하는 걸 수도 있다. 그러길 바란다.

퐁피두센터와 협업한 곳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서안미술관(西岸美术馆, West Bund Museum)의 메인 전시실은 닫혀있었고 (전시 중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음에도), 화력발전소를 개조하여 만든 것으로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비견되는 (역시나 정말 거대한) 상하이 당대예술관(上海当代艺术馆, Museum of Contemporary Art Shanghai, MOCA Shanghai) 로비는 컴컴하고 썰렁하게 (구석엔 초록 포대로 대충 싸매놓은 무언가가 전시(?) 되어있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유롭고 실험적이고 사소한 질문들, 그에 대한 저마다의 답이 생생하게 공간을 채우던 때가 있었다 들었다. 거대함을 체화한 예술가들의 역동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빈 공간만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출장 중 부쩍 궁금한게 많아진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눠준 고마운 챗GPT의 중국 현대미술지구 웨스트 번드에 대한 견해

 
고대 문화의 공간을 의리의리하게 갖추는 한편 동시대의 예술현장은 쇠락하도록 두는 것.

이 힘 있고 화려한 도시의 에너지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걸까?

그러나.
터덜터덜 서안미술관을 나서던 우리의 눈앞에 별안간 펼쳐진 재잘대는 목소리의 향연. 와글와글 여기저기서 제각각 터져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는 한마음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등허리를 잔뜩 젖히고 광각을 동원해야 겨우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거대한 건물 같은 게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 좋아하는 색도, 무늬도, 뜨개질 기법도 제각각인 완전히 다른 이들의 저마다의 목소리. 우린 이런 것을 보고 싶었다고! 

시베리아 바람이 몰아치던 웨스트 번드 강가의 온도를 살짝 올려주었던 합동 니팅 작품.

 
 


 
 

 
만약 나에게 상해 박물관 전체 유물 중 딱 하나를 선택하여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이 담백한 백자를 고르고 싶다. 누군가의 지극히 사적인 취향을, 일상을 채워주었을 기물. 

12만 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목이 꺾일 만큼 우러러보아야 하는 거대한 박물관에서 돌아온 후에도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것은 익숙하거나, 필요하거나, 바라거나, 애타게 하는 나와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공간이란 아무래도 좋고, 그런 이야기가 없이는 아무리 번듯한 공간도 허황되다. 
 

지금 우리의 공간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까?